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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자존심에서 '좀비 기업'으로... 엔씨소프트 몰락

 한때 '벤처기업의 신화'로 불리던 엔씨소프트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이용자 수, 실적, 주가 등 모든 지표가 하락세를 보이며 '3N'(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의 위상은 과거의 영광이 되어가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역사는 1997년 김택진 대표가 자본금 1억원으로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인수한 '리니지'는 PC방 영업 전략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인터넷 이용자가 1만명 남짓이던 환경에서 PC방을 거점으로 월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성공의 발판이 됐다. 1998년 동시접속자 1000명으로 시작해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10만명을 돌파했다.

 

엔씨소프트의 실적도 급상승했다. 창사 2년 만에 8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2000년에는 전년 대비 7배인 58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같은 해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2003년에는 코스피로 이전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에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 블레이드&소울(2012년) 등 연이은 히트작을 선보이며 성장을 이어갔다. 초기 엔씨소프트는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리니지의 2D 그래픽에 안주하지 않고 리니지2를 과감히 3D로 제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2017년 '리니지M'에 도입한 확률형 아이템이 전환점이 됐다. 이 시스템은 게임사가 설정한 확률에 따라 다양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반복적인 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도박형' 요소는 단기적으로 엔씨소프트의 매출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2017년 하반기 모바일 매출만 9953억원을 기록했고, 그 해 역대 최대 매출인 1조7587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 '확률형 아이템'은 결국 엔씨소프트의 발목을 잡는 '양날의 검'이 됐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엔씨소프트는 이러한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리니지2M', '리니지W' 등 신작에도 동일한 수익 모델을 적용했다. 심지어 '트릭스터M'과 같은 다른 게임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결국 이용자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매출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2022년 2조5718억원이었던 매출은 2023년 1조7798억원으로 30.7%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5590억원에서 1373억원으로 75.4% 줄었다. 2024년에는 상장 이래 처음으로 영업적자(1092억원)를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위기 극복을 위해 엔씨소프트는 2023년 4월 구조조정 전문가인 박병무 전 VIG파트너스 대표를 영입해 김택진과의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500명이 넘는 직원의 희망퇴직과 비핵심 사업 분사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혁신적인 변화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최근 출시한 '저니 오브 모나크', '호연'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도 흥행에 실패하며 "리니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한때 기민하고 혁신적이었던 엔씨소프트는 이제 '리니지의 감옥'에 갇혀 있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직원의 글처럼 "모든 IP를 리니지화하려는 상부의 방향성"이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을 막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리니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진정한 혁신을 이루어야 할 때다.